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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고가답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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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소
경상남도 고성군 하일면 금단길 150-7
개방시기
~
문의처
055-670-2225
개요
상세정보

01 장산리허씨고가이 사당은 조선 고종 2년(1865)에 세워져 허씨 4대 선조의 위패를 모신 곳이다.

사당과 안사당, 그리고 가옥 한채와 2층 건물로 구분된 구조로, 조선말(1800년대)에서 일제시대에 걸쳐 나타난 한식전통가옥과 화식주택이 혼합된 대표적인 가옥으로써, 건축구조형식과 건축재료 및 평면 구성이 복합적으로 표현되고 있다.

건물배치는 안채, 안사랑채, 바깥 사랑채, 솟을대문, 가묘, 광 등으로 구성되었으나, 정면 4칸 초가집의 안채는 퇴락하여 헐리고 초석과 기단이 남아 있다. 안사랑채는 앞면 5칸, 옆면 2칸, 한식토기와의 우진각지붕으로 안채 전면에 나란히 배치되어, 안사랑채 뒷면의 안마당은 앞면과 사랑마당으로 구분되어 독립된 대청공간을 배치한 평면구성을 이루고 있다.

가옥은 1912년에 지은 집이고 손님 접대나 서재로 사용하고 있다. 2층 건물은 1912년에 지어 현재 집무실로 사용 중인데 가옥과 구름다리로 연결되어 있다.

안사당은 고종 22년(1885)에 지은 것으로 솟을대문 형식이며 대문 양쪽에 방이 있다. 예전에는 손님을 접대하였으나 지금은 사용하지 않는다.

ㄱ자형 평면의 바깥사랑채와 2층 구조의 광은 화식목조 건물로 화식 평기와의 우진각지붕으로 되어있다.솟을대문 및 가묘는 한식목조 건물로 전형적인 전통가옥의 배치형식과 조형미를 보여 주고 있다.

02 소천정소천정은 조선 중기 장군인 의숙공 최강의 공적을 기리기 위해 공이 어릴 때 무술을 연마하고 출생지인 이곳 구만면 효락리에 1872년 최씨의 후손들이 건립하여 공을 배향하는 정자이다.

최강은 선조 18년(1585년) 무과에 급제한 뒤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형 균과 함께 의병을 일으켜 고성, 진해 사이에서 많은 공을 세웠으며, 특히 화공법을 써서 왜적의 선박을 불지르고 전공을 세웠다.도총전력에서 가리포(전남 완도) 검사로 임명되었고, 그후 경상도 좌수사 광해군때 충청수사를 역임했고, 사후(死後)에는 병조판서에 추종되었다.

소천정은 앞면 3칸.옆면 1칸 규모의 건물로,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여덟 팔(八)자 모양인 팔작지붕이다. 평면의 형식과 구조로 보아 자연의 경관을 감상하고 인격을 닦는 일반적인 정자의 형식에서 벗어나 공부하고 집회를 갖는 재실의 성격을 뛰고 있다. 기단정면에 기존 기단과 나란히 둥근 초석이 4개 남아 있는 것으로 보아 원래의 건물은 현재보다 조금앞에 정면 3칸의 평면을 가진 형태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곳에는 가리포(전남 완도) 검사, 포전실록 1매, 선무원 중공신록 훈교지 1매, 의숙공 시호교지 1매, 증지교지 1매, 의숙공 실록 목판 45매의 유품이 소장되어 있다.

03 송계리 이씨고가이 고택의 건축연대는 확실히 알수 없으나 기록에 따르면 현 소유자 이겸수의 조부가 약 90여년 전에 지은 것으로 추정되어지며, 이 지방의 전형적인 토호의 가옥으로 건물 축대는 장대석으로 되어 있고 사랑채의 기둥은 원주로 느티나무이며 솟을대문에는 목조건물의 지붕틀을 짜 세울 때 마룻대를 올리는 상량의 명(銘)이 무오 9월로 기록되어 있다.

건물은 안채, 사랑채, 곳간채, 헛간채, 솟을대문 등으로 구성되어 있고, 대지를 넓게 잡고 안채와 사랑채를 별도의 건물로 하여 앞 뒤로 나란히 높고 곳간채를 각각 ㄷ자형으로 배치한 전형적인 부농들이 소유한 남부형 민가이다.

안채(앞면 6칸, 옆면 2칸, 팔작지붕, 골기와), 사랑채(앞면 5칸, 옆면 2칸, 팔작지붕, 골기와), 곡간채(앞면 5칸, 옆면 2칸, 모임지붕 골기와), 헛간채(앞면 5칸, 옆면 2칸, 팔작지붕으로 방앗간, 창고용으로 사용) 솟을대문으로 배치되어 있다.

04 학림리 최영덕씨고가이 가옥은 우리나라 남부지역에 분포된 부농의 주거형으로 현 소유자의 5대조 최태순이 고종 6년(1869년)에 지은 옛집이다. 모두 5동의 건물이 남북으로 배치되어 있으며, 각 건물의 평면형태는 "ㅡ 자형"이고 안채, 익랑채, 곳간채, 대문간채 등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안채와 사랑채가 전후로 평행하게 배치되어 있다. 사랑채를 지나 안채에 이르는 과정에서 안마당의 공간이 직접 노출되지 않도록 하기 위한 시선 차단벽이 설치 되어 있다.

안채는 앞면 5칸의 우진각 지붕으로 하고 익랑채는 앞면 4칸의 팔작지붕, 곳간채는 앞면 5칸의 팔작지붕이고, 사랑채는 앞면 7칸의 팔작지붕에 처마 네귀에 활주를 설치하였다. 대문간채는 앞면 5칸의 맞배지붕 솟을 대문이고 담장은 이 지역에서 출토되는 자연석을 쌓아 골목길의 독특한 풍토성을 보여주고 있다.

05 육영재육영재는 조선 경종 3년(1723년) 하일면 학림리 계곡에 전주최씨 학동문중에서 후손들의 학문지도와 영재육성을 위하는 뜻에서 『육영재』로 이름하고 세웠던 것으로 처음에는 초가삼간으로 시작했으나, 그 뒤 학생 수가 늘어나자 헌종 11년(1845년) 기사년에 현 위치에 자리를 옮겨 창건하였다.

본관은 앞면 6칸.옆면 2칸 건물로 기둥은 지름이 50㎝나 되는 원형기둥이고, 사랑채는 앞면 5칸 옆면 2칸, 곳간채는 앞면 5칸 옆면 1칸, 솟을대문은 1칸의 팔작지붕 형식으로 4동의 목조와가 건물이 동서남북으로 배치되어 있다.

문짝은 옛 조상들만이 만들 수 있는 매우 정교하고 독특한 형식으로 제작되어 있고, 특히 좌우에 있는 방의 천장은 일반형식과 다른 소나무를 조각하여 만드는 육송판재로 매우 특이한 조형 양식을 보이고 있다.

06 소산정사소산정사는 1890년에 조성되고 1915년에 중수하였으며, 호은정(소실), 한루정, 대문간채, 곳간채, 관리사 등으로 일곽을 이룬 품(品)원 자형 배치이다.

소산정사는 앞면 5칸.옆면 2칸 규모로 지붕은 옆에서 볼 때 여덟 팔(八)자인 팔작지붕이다. 한루정은 앞면 3칸.옆면 2칸 규모의 팔작지붕으로 소산정사의 동쪽에 나란히 배치되어 있고, 대문간채는 앞면 5칸.옆면 1칸으로 중앙에 소산정사로 드나들 수 있는 대문을 비롯하여 각 건물과 통하는 대문이 있으며 곳간채는 서측에 직각으로 꺾여 좌향을 하고 있다.

조선후기와 일제시기 건물의 실용성에 맞춘 다양하고 변화많은 건물의 특색을 갖추고 있어 후기 건축사 연구에 중요한 자료이다.

07 청광리 박진사 고가밀양 박씨의 옛집으로 대대로 진사와 효자가 태어났으며 조선시대 사대부 가옥의 형태를 잘 갖추고 있다. 이 집에서 효자 박효근이 출생하였고, 그의 아들 박한회와 손자가 진사를 지냈다.

조선 후기에 조성되어 일제시대에 증축된 주택으로 실용성과 전통성이 조화된 전통한옥이며 조선후기 건축 변천사 연구에 중요한 자료이다.

이 가옥은 사대부 주택의 형태를 갖추고 있으며, 안채와 사랑채 2동, 곡간채 2동, 대문간채로 구성되어 있고 담장이 잘 보존되어 있고, 대문에는 효자정려 현판이 붙어 있다.

대문간채, 행랑마당, 안마당, 사랑마당은 각각 담으로 구획하고 정원을 구성하고 있다.앞면 5칸.옆면 2칸의 안채는 부엌, 방, 대청, 갓방으로 구성되어 있고, 안채를 중심으로 동쪽에 담장을 둘러 별당처럼 안사랑채를 배치하였고 중문간채를 바깥사랑채로 이용하였다. 중문에서 안채가 직접 보이지 않도록 담장을 둘렀다. 집 주위로는 전체적으로 높은 담장을 두르고 있는데 기와조각을 섞어 모양을 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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